[비평문] 남수 작가 시네마갤러리 초대전 ‘공간을 거닐다’. 비평
관조! 눈을 위한 세레나데- 눈을 위한 오바드 Aubade pour les yeux
By 다니엘 세우소(Daniel Seux) 교수
파리 1대학 팡테옹 소르본 전 학장
1. 과밀한 도시의 역설, 관조적 공간성
한국의 시각 예술, 특히 오늘날의 렌즈 기반 이미지 문화에서 나를 지속적으로 매료시키고 놀라게 하는 하나의 근원적 요소가 있다. 그것은 마치 잊힌 순결의 울림처럼, 원초적 자연과의 접촉을 향한 미학적 갈망이다.
파리 팡테옹 소르본 대학 ‘미쉘주르악 갤러리’에서 열린 남수 작가의 전시에 임했을 때, 나는 그의 사진들 사이를 거닐며 미묘하고 섬세한 사유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이 몽상은 시작에선 향수 어린 회상으로 다가오지만,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창조적 욕망을 촉발하는 투쟁적 에너지로 변모했다.
여기서 하나의 변증법적 질문이 제기된다: 네온과 광고판으로 포화된 도시 공간, 제한된 면적과 세계 최고 수준의 밀집도를 자랑하는 한국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온 예술가가 어떻게 이처럼 탁월한 공간 감각과 관조적 몰입의 태도를 체득할 수 있었는가? 이는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던지는 하나의 강력한 미학적 계시다.
2. 빛의 존재론적 역할과 색채의 연금술
남수 작가의 작업은 우리를 세계가 처음으로 경이로움을 선사했던 시원의 순간으로 소환한다. 수많은 도상(圖像)적 아름다움 속에서, 나는 그의 시각적 심포니에 이끌려 몇몇 이미지를 무작위로 선택한다. 두 언덕의 능선 사이로 하강하는 태양, 영롱한 진주 목걸이로 전이된 빗방울, 고목의 단면 위에 섬세하게 내려앉아 나비의 형상으로 변주된 매화, 중력에 도전하듯 허공에 멈춘 새의 이미지들. 관객의 시선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우리에게 무심히 주어져 있는 존재의 숭고함을 더 깊이 응시하라는 작가의 근본적인 초대에 응답하게 된다.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는 것은 빛의 존재론적 기여이다. 빛은 더 이상 사물을 외피에서 조명하는 객관적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 자체의 내면으로부터 발산하며, 사물을 먹이고, 그 본질적 물질성(substance) 속에 거주한다. 이 빛의 역동적 힘으로부터 색채가 증폭되어 솟아나고, 그 풍부한 톤의 스펙트럼 속에서 극대화된다. 하늘색 바탕 위를 뚫고 나오는 살구 색 붉은 톤, 이미 황혼에 포개진 하늘을 떠도는 눈처럼 하얀 목화송이, 마티스(Matisse)의 꽃다발처럼 숲을 뒤덮은 연분홍과 흰색의 봄빛 새싹들. 이처럼 빛이 된 색채는 시각적 파편들을 하나로 묶어 ‘공간을 통일된 장(場, Field)’으로 수렴시킨다.
3. 건축적 경로, 시간 여행의 미학
작가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시각적 여정은 동시에 고대의 시간으로의 산책이다. 이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노스탤지어가 아닌, 영원히 현재진행형인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이다.
현대 문명의 소음이 희미하게 소멸된 듯하며, 만물을 애도하게 만드는 시간의 흐름을 넘어, 한국의 전통 궁궐들은 그들의 고풍스러운 위엄을 회복한다.
다시 한번, 색채는 빛으로 재전환된다. 창과 깃발을 든 수문장의 의복에서 발산되는 청색, 적색, 녹색은 천장의 문양과 조응하며 시각적 앙상블을 이룬다. 낡은 장미색이 주조를 이루는 벽과 기둥의 색은, 종종 다채로운 뉘앙스의 문양이 풍부한 지붕과 조화롭게 맥락을 형성한다.
또한, 피사체를 향한 ‘렌즈의 위치(la position de l'objectif)’가 시선을 어떻게 열고 ‘경로의 공간(l'espace d'un cheminement)’을 정의하는지 주목해야 한다. 이는 눈을 위한 시각적 동선인 동시에, 실제로 그 공간을 걷는 경험을 위한 건축적 설계이기도 하다. 때로는 시선이 오직 기하학적 구성 자체에만 몰두하며 더욱 추상적인 형태로 변모한다.
이는 관객의 눈이 매료될 소재를 끌어낼 만큼 충분히 복잡하면서도, 그 속에서 깊은 고요와 평온을 찾을 만큼 충분히 단순한 균형의 미학을 구현한다.
작품 속에서 가장 고귀한 재료인 나무가 지배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목수와 가구 장인이었던 나의 선조들을 통해 나무는 나에게 익숙한 촉각적 기억이다. 남수 작가의 이미지를 관조할 때, 나는 한국의 전통 건축이 지닌 나무, 빛, 색채의 완벽한 조화 속에서 심오한 화음을 느낀다.
남수 작가는 우리를 시간 속으로, 그의 고국이 지닌 근본적 뿌리로 여행하도록 이끌며, 그 아름다움의 정수를 우리와 함께 나누는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다.
Aubade pour les yeux
Daniel Seux
Doyen de l'Université Panthéon-Sorbonne Paris 1
Une chose me surprend toujours, et surtout m'enchante, dans le cinéma coréen. Une chose qui résonne à me oreilles comme un hymen perdu : le contact avec la nature.
A Paris, dans la galerie « Journiac » de la Sorbonne où se tenait l'exposition de Soo Nahm, lorsque je laissais mon regard flâner le long de ses photographies, je ne pouvais que m'abandonner à une délicate rêverie, nostalgique en son premier temps, combative dans les désirs qu'elle suscitait. Et à un questionnement : comment un artiste venu d'un pays aussi urbanisé que la Corée du sud, où les villes sont saturés de néons et les façades de panneaux publicitaires, dans un pays à la superficie restreinte et dont la densité est l'une des plus élevées du monde, comment un homme peut-il avoir un tel sens de l'espace, une telle aptitude à la contemplation ? Quelle leçon !
Le travail de Soo Nahm nous rappelle aux premiers émerveillements du monde. Parmi tant de beautés, j'en choisis quelques-unes, au hasard, en me laissant bercer par leur symphonie . Un soleil qui se couche entre deux hanches de colline, des gouttelettes de pluie transformées en un collier de perles, une fleur devenue papillon délicatement reposée sur un morceau d'écorce, un oiseau suspendu comme au défi du ciel. L'œil ne peut se lasser de cette magnificence qui nous invite, simplement, à mieux regarder ce qui nous est offert.
Me frappe, surtout, l'apport de la lumière. Souvent, elle émane comme des choses elles-mêmes. Elle ne les éclaire plus ; elle les nourrit, les habite de sa substance. De sa puissance surgit la couleur, amplifiée dans la richesse de ses tons. Un rouge abricot se détache sur un fond bleu azur, des balles de coton neige vagabondent dans un ciel déjà voué au crépuscule, des graines de fleurs vert printanier couvrent la forêt de leur parure rose et blanche, à la façon d'un bouquet de Matisse. L'espace s'unifie.
La promenade qui nous est proposée est aussi celle des temps anciens. Ancien, et à jamais actuel ?
Il semble que le monde moderne se soit évanoui et que, par delà le temps qui de toute chose fait son deuil, les palais retrouvent leur antique prééminence. Une nouvelle fois, la couleur se fait lumière. Celle du vêtement des gardes, tenant leurs lances ou leurs bannières; et dont les bleus, les rouges et les verts répondent aux dessins d'un plafond. Celle des murs et des colonnes où dominent le vieux rose, en correspondance, souvent, avec les toitures, si riches de leurs motifs aux multiples nuances.
Comment, encore, ne pas admirer la position de l'objectif, toujours au point juste, celui qui ouvre les perspectives et définit l'espace d'un cheminement. Pour l'œil autant que pour la marche. Quelquefois, le regard se fait plus abstrait, soucieux de la seule composition géométrique. Suffisamment complexe pour que les yeux y puisent matière à leur fascination ; suffisamment simple pour qu'ils y trouvent la sérénité.
Un matériau domine, le plus noble de tous, le bois. Par mes ancêtres, charpentiers, menuisiers, ébénistes, il m’est familier. Je le caressais du bout de mes doigts dans l'atelier de mon grand-père. En contemplant la photographie de Soo Nahm, je me sens en harmonie avec l’architecture traditionnelle coréenne. Le bois, la lumière et la couleur y trouvent leur juste concordance. Soo Nahm nous invite à voyager dans le temps, dans les racines de son pays natal. Et sait nous en faire partager le goût de la beauté.